2010년 개인전에 - 서성록(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

페이지 정보

첨부파일

본문

엄의숙, 수채로 실어낸 생명의 환희
                                                                                                                서성록(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
 
얼마 전 19세기 영국 풍경화의 진수를 선보인 <영국근대회화전>(한가람미술관)을 관람하며 수채화의 묘미를 실컷 맛본 적이 있다.
영국의 화가들은 한국의 산하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아름다운 풍광과 먹구름이 드리운 하늘, 살랑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실록의 숲,
시간이 멈춘 듯한 호젓한 호수 등을 대단히 정교하고도 감칠맛나게 보여주었다.
헨리 헌트나 프라이스 보이스에서 보듯이 수채화를 유화 못지 않은 주요한 표현매재로 적극 활용했다는 것이 이채롭게 다가왔다.
르네상스 미술가들에게 ‘프레스코’가 있었고 바로크 화가들에게는 ‘유채’가 있었다면, 영국 화가들에게는 ‘수채’보다 더 완벽한 재료가 없는 듯 했다.


이전과 같은 전성기는 지났지만 수채는 지금도 일부 작가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다.
이글에 소개한 엄의숙도 여기에 속한다. 그는 지금까지 열어온 전시회를 모두 수채화로 장식할만큼 수채화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아마도 투명하고 순도높은 칼라를 선호하는 작가의 체질에 수채물감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리라.
엄의숙이 그림을 그릴때 가장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꽃의 생명력을 어떻게 하면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가의 문제이다.
실제 꽃보다 더 화려하고 발랄한 색상과 극적인 대조, 활기찬 이미지 등에서 이런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정물에는 장미, 들국화, 철쭉과 같은 꽃이나 석류 또는 자그마한 씨앗들이 등장한다.
화병에 담긴 꽃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고 있다.
화장기를 찾아볼 수 없는 그 자체로 완벽한 천연미인인 셈이다.
사실 그런 맑고 투명한 꽃들은 언제 봐도 실증이 안나는, 자연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작가는 집중조명의 방법을 선호한다.
무슨 얘기인가하면 연극무대의 조명처럼 배경을 어둡게 하고 대신 주인공을 밝게 조명함으로써 시선을 자연스럽게 사물에 집중시킨다는 뜻이다.
마치 사진을 찍을 때 피사체를 선명하게 하고 배경을 흐릿하게 처리하는 아웃포커싱 기법을 연상시킨다.
 배경을 한발짝 물러나게 함으로써 사물이 돌출된 것처럼 만들고 따라서 우리의 시선을 꽃이나 과일에 주목하게 만든다.
다음으로 작가는 꽃이나 과일을 관찰에 의지하여 꼼꼼히 그리는 것을 선호한다. 즉흥적인 구성이나 숨가쁜 붓놀림은 가급적 자제한다.
꽃의 자태를 재현해내는 솜씨 뿐만 아니라 식탁을 덮은 레이스 장식, 의자의 천장식은 어찌나 정교하다 못해 눈이 핑핑 돌 지경이다.
그러나 꼼꼼한 묘사만으로 사물의 생동감을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기에 작가는 여기에 광선을 도입한다.
결국 생명을 키우는 것은 빛에서 나오는 따듯함이라는 것을 주지시키듯이 꽃과 광선이 한몸이 되어 찬란한 아름다움을 피워낸다.
그가 실어내는 꽃들은 밝고 화사하다. 마치 빛의 섬광 가루를 화면에 뿌려놓은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울한 꽃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빛을 자양분삼아 자란 꽃은 활력이 넘친다.
빛의 유혹에 넘어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만다.


근래에 작가는 탁자위의 꽃병에서 벗어나 기물이 공중에 떠있는 듯한 새로운 구도의 작품을 선보인다.
꽃병이나 예쁜 장신구들이 떠 있거나 혹은 접시나 주병, 그리고 각종 도자기가 공중에 떠있는 모습을 취하는데 마치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화면처럼 중력을 느낄 수 없는 공간이 등장한다.
이런 시도속에서 우리는 정형화된 기물배치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공간을 경영해가려는 작가의 발상을 엿볼 수 있다.
그가 수채화를 고집하는 것에 대해서도 살펴봄직하다.
흔히 매재의 편리성 때문에 아크릴이나 유화를 즐겨 사용하지만 수채화는 그와는 다르다.
 다른 재료는 만일 고치고 싶은 부분이 생길 경우 소설가가 퇴고(推敲)를 하듯이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지만
수채화는 물감이 일단 종이와 접촉하여 마르는 순간 고치기가 어려운 까다로운 재료이다.
그러기에 작가로서는 훨씬 더 신중하고 섬세한 그림그리기가 요구된다.
그런데 이런 매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엄의숙은 수채의 매재를 능숙하고 절도 있게 다루고 있다.
 즉 수채화의 장점이랄 수 있는 풍부한 농담에서부터 투명한 색조까지 재료의 속성을 거뜬히 살려내고 있다.
근래에 그가 한국수채화협회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이나 남송국제아트쇼에서 우수작가상을 받은 것은 그의 조형능력을 높이 평가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
미술가들은 사물의 외관이냐 사물의 본질이냐를 두고 고민해왔으며 그것이 미술의 오래된 과제가 되기도 했다.
미술가는 시선을 끄는 매력적인 사물을 보고 재현할 욕심에 현혹되기도 하고,
만일 사려깊은 화가라면 사물의 아름다움이 조화에서 온 것인지 유용성에서 온 것인지, 더 궁극적인 아름다움은 어떤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둘중의 하나만을 선택하는 것은 동전의 한 면만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사물의 외관에 치우치다보면 단순히 ‘기술’로 전락할 것이 우려되고 본질에만 치우치다보면 미술의 특성을 도외시한 채 ‘피상적인 관념의 포로’가 되기 쉽다.
엄의숙의 경우는 사물의 외관을 포기하지 않은 채 그 본질을 충실히 표현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현란한 외형과 더불어 자연의 경이로움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빛과 하나 되어 찬란한 생명을 꽃피워내는 꽃, 그 사물에 대한 찬찬한 응시가 그의 그림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꺼질 줄 모르는 생명에 대한 예찬이 도도히 흐르고 있기에 우리에게 또렷한 메아리를 들려주는 것이 아닐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