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개인전에 신항섭 - 미술평론가

페이지 정보

첨부파일

본문

형태및 색깔이 만들어내는 빛의 아름다움
                                                      신항섭 _ 미술평론가
자연을 보면 그 물상 하나 하나가 참으로 오묘하고 신비롭기 그지 없다.
겨우내 죽은 듯이 움츠리고 있던 나뭇가지가 봄기운을 알아채고 말간 새순을 밀어내는
모양을 눈여겨보면 시인이 아니더라도 그 눈 시린 아름다움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자연이 발설하는 아름다움이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빛이 만들어내는 조화임을
 
깨닫기는 쉽지 않다. 빛이야말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는 신비의 묘약이다.
 
 
제 아무리 아름다운 꽃일지라도 빛이 없다면 어찌 스스로의 존재를 형용할 수 있으랴
엄의숙의 그림을 보면서 새삼 빛의 존재가치를 깨닫게 된다. 그의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빛은 당연히 형태 및 색깔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존재한다.
달리 말해 태양의 순수한 열정에 의해 깨어나는 꽃의 아름다움을 통해 인지되는 것이다.
그는 형태및 색깔이란 결과적으로 빛의 조화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듯 하다. 그러기에 그는 명암을 나타내기 위한 상투적인 회화기법
으로 빛을 도입하는 것이 아님을 천명하려는 듯 빛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그래서일까..그의 그림은 빛에 감화된 미적 감흥으로부터 비롯되는 진정한 빛에
대한 찬미이고 헌사라고 할 수 있다.그렇다. 그는 자연물상의 형태 및 색깔을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태양의 빛 그 순정한 아름다움에 속수무책 현혹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 유혹에 빠져드는 일이야말로 삶의 환희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는 그림을 통해 그와 같은 환희의 감정에 흔쾌히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의 그림에는  그처럼 자신이 보고 느끼는 아름다운 감정, 즉 미적감흥으로 채워진다.
아름답게 보려는 눈에 비친 세상은 온통 긍정의 산물일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 시켜
주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이로 미루어 그가 세상과 어떤 마음가짐으로 만나고
있는가를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의 형태보다는 색깔을,색깔보다는 빛의 아름다움에 이끌리고 있다.
이러한 흔적은 그림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작품에서 빛은 과다하다싶으리만큼 밝고 쾌활하며 선명하다
그러기에 강렬한 햇살과 마주하는 소재의 경우 색깔이 부분적으로
탈색하거나 증발해버린다. 소재가 꽃일지라도 부분적으로 빛을 반사시킴으로써
마치 바랜 색깔처럼 보인다. 반면에 그 나머지 부분의 색깔은 상대적으로 더욱
선열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떤 소재이든 시각적인 인상이 강렬하다.
회회작으로 보자면 명암대비가 뚜렷한 것이다. 그 뚜렷한 명함대비는 시각적인
쾌감 또는 쾌적함으로 다가온다. 달리 표현할면 애매한 구석이 없이 명료하고
명백하다.
 
소재의 형태를 명확히 묘사하는 것은 사실주의 회화기법이지만 그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현실과 회화의 경계를 뚜렷이 새긴다. 그림은 일루전의 세계일 뿐이고,
그러기에 현실과 일치시켜야 할 의무는 없다. 오히려 현실을 승화시킴으로써
이상적인 세계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그림은 현실이 아님을 그는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소재의 배경을 추상적으로 처리하는가 하면 화면을
분할하고, 이미지를 중첩하는 따위의 꼴라주 형식과 유사한 구성적인 이미지를
도입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화면을 분할하여 사실적인 이미지에 대응하는
실루엣을 대비시키기도 한다.
 
이와같은 일련의 현대적인 조형어법은 표현영역의 확장과 더블어 그 자신의
내면, 즉 의식세계를 침투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보여지는 사실을 실제에 가깝게 재현하는 방법으로는 내면 세계를 담는데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다.
 
사실적인 묘사는 때로 그 자신의 목소리를 담는데 장애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적인 묘사 작업에서는 작가적인 상상력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을 변용하는 것은 화가만의 특권이다. 그는 그 특권을 추상과 구상이 조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데 행사하려는 것이다.
 
배경에 추상적인 이미지를 도입하거나 또는 면 분할 그리고 이미지의 충첩 따위의
현대적인 조형어법의 작업은 시각적인 긴장 및 활기를 불러 일으킨다.
이질적인 이미지를 대비시킴으로써 극적인 긴장이 고조되는 반면에 서로간의
상승효과를 가져와 결과적으로는 조화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
 
문제는 어떻게 조화의 묘수를 찾아내는가에 있다. 그는 이러한 과제를 타고난
감각으로 무리없이 해결해가고 있다.
최근의 몇 작품은 수채화가 가지고 잇는 특유의 투염성을 잃지 않음면서도
채색의 두께와 깊이를 얻고 있다. 이는 작업에 대한 열정 및 작업량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그림이란 결국 기능의 숙달을 시작으로 하며 마침내
기능을 뛰어넘는 곳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이 시간 그가 보여주는 기술적인 숙련과 빛에 감응하는 예민한 미적
감수성 그리고 그림의 깊이는 작업량에 비례하는 것이다
잠재적인 스스로의 재넝을 어떻게 꽃피우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Login